[랍 휴스 칼럼]내가 본 히딩크
미국전에서 선수들을 독려하는 히딩크 감독. – 로이터뉴시스 《한국축구를 아시아 사상 첫 월드컵 4강으로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히딩크 감독의 성공 신화를 어떻게 봐야 할까. 본보는 2년전부터 본보 월드컵 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는 잉글랜드 출신의 명칼럼니스트 랍 휴스에게 ‘제3자의 입장’에서 3회에 걸쳐 히딩크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부탁했다. 그는 스포츠, 특히 축구와 관련한 세계적인 대기자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브라질 정부는 90년 그에게 최고의 시민 훈장인 ‘오더 오브 더 서던 크로스’를 수여하면서 “스포츠 안에서 개인과 국가의 영혼을 이끌어내는 세계 최고의 칼럼니스트”라고 격찬했다. 그는 세계적 권위지인 영국 ‘더 타임스’ 수석 스포츠 기자로 7년을 보내기도 했다. 현재는 프리랜서로서 선데이 타임스를 비롯한 세계 굴지의 언론 매체에 깊이 있는 칼럼을 쓰고 있다. 이번 월드컵 기간에도 판정 시비가 불거질 때마다 유럽 언론은 물론 심판들까지 그에게 조언을 구하고 있다.》
거스 히딩크가 내 나라,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이었다면 지금쯤 기사 작위를 받기 위해 여왕 앞에 무릎을 꿇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그는 6개월 전 벌써 쫓겨났을 것이다.
나는 지난밤 광주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동안 토요일 저녁 무렵 시작된 길거리 응원의 격정적인 파티가 일요일 새벽까지 이어지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유럽인인 히딩크 감독이 한국 문화에 유례 없는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을 실감했다.
나는 한국의 기성세대가 공동체의식을 잃고 있는 젊은 세대를 걱정하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제 이 젊은 세대들은 하나의 끈끈한 유대감을 갖게 됐다. 다섯 번이나 월드컵 본선에 오르고도 1승도 못 챙겼던 팀이 이번 대회에서 세계 톱 클래스의 강호를 세 팀이나 격침시켰다. 포르투갈은 낙담 속에 떠났고 이탈리아는 분통을 터뜨리며 집으로 갔고 스페인은 지금 좌절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제3자로서 나는 이들 세 팀이 어느 정도 기만당했다고 느낀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포르투갈은 한국의 용광로 같은 애국심 속에 2명이 퇴장당했다. 이탈리아는 심판이 썩었다고 주장했다. 스페인은 홈 어드밴티지에 밀렸거나 눈이 먼 심판들 때문에 2골이 무효처리됐다고 말한다.
나는 제3자이다. 실수도 보고 외국팀들의 불평도 들었다. 그리고 판단을 내린다. 이들 세 나라의 불평은 붉은 악마가 사기를 불어넣고 네덜란드인이 지도하는 한국팀이 이미 엄청난 파워를 발휘하고 있다는 현실을 굳이 외면하려는 것이다.
나는 ‘믹스드 존’에서 그를 본다. 믹스드 존은 온갖 백그라운드와 피부 색깔, 주장을 가진 언론인들이 감독과 선수 주위에 몰려들어 갖가지 언어로 질문을 퍼붓는 ‘동물원’ 같은 곳이다.
히딩크 감독은 영어든 네덜란드어든 스페인어든 자신이 기적을 실현시킨 나라의 언어를 제외한 모든 언어로 대답한다. 이제 그는 분명 한국 대통령보다 더 인기가 높다. 우리가 어디를 돌아보든 히딩크씨의 얼굴을 모델로 한 광고를 볼 수 있고 기업들은 인사 담당자들에게 히딩크 감독 같은 경영자를 찾으라고 지시를 내리고 있다.
마법 같은 일이다. 지난해 11월 내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히딩크 감독의 인기는 볼품없었다. 당시 그는 비무장지대 근처에 새로 지어진 파주트레이닝센터를 막 얻었고 강하기 이를 데 없는 체력강화 프로그램을 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보기에 불가능한 것을 하려했다. 한국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유럽팀처럼 바꾸려 했던 것이다. 히딩크 감독은 내게 “당신 생각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일단 시도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우리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면 한국은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말했다.
올 1월 강한 체력 프로그램이 시작됐을 때, 그리고 주장 홍명보가 히딩크 감독이 요구하는 수준에 아슬아슬하게 턱걸이하고 있을 때, 정몽준씨와 한국의 축구협회가 감독을 잘못 뽑았다는 비난이 확산됐다. 일부러 고른 강팀과의 평가전 결과도 좋지 않았다. 히딩크 감독은 배우는 과정일 뿐이라고 말했지만 사람들의 신뢰는 점점 더 엷어져 갔다.
이 부분이 중요한 점이다. 나는 잉글랜드 축구협회라면 그 순간 경기를 일으켰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나라의 축구협회는 무능하다는 비난 속에 대중의 불만을 견뎌내기는커녕 스타 선수들이 미국 해병대보다 강한 훈련을 감수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의 강철 같은 신념과 정몽준씨의 믿음은 강했다. 정몽준씨는 한국의 자존심을 세워야 한다는 압력을 받았다. 히딩크 감독은 경기 준비와 팀워크가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적어도 한 경기를 이긴다는 게 그의 목표였다. 물론 그는 16강 진출을 꿈꿨다. 아울러 그는 한번도 말은 안 했지만 한국을 적어도 필리프 트루시에가 이끄는 일본만큼은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 숨겨진 계약 조건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모든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파이터’다.
히딩크 감독은 처음 정몽준씨로부터 서울로 오라는 제의를 받았을 때 요구조건이 뭐냐고 물었다. 정몽준씨는 “월드컵 우승”이라고 말했다.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우승은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정몽준씨는 멀뚱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안될 이유가 있습니까?”
랍 휴스 잉글랜드 축구 칼럼리스트 robhu@compuserve.com
[랍 휴스 칼럼]내가 본 히딩크
독일戰 구상하는 히딩크 – 신석교기자 《두 번만 더 큰 성취를 이룬다면 한국축구대표팀은 최후의 목표, 월드컵을 품에 안게 된다. 나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보다 더 찬란한 업적을 남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선수들과 국민, 정치인은 물론이고 재계(財界)의 회의론자들까지 이 네덜란드인을 스포츠 영웅 이상의 자리로 격상시키고 있다. 그는 가끔 평화와 고요, 프라이버시를 외치지만 본래 수줍어하는 부류가 아니다. 평범한 선수였지만 뛰어난 감독이었던 히딩크가 여러분의 나라를 떠날 때 그는 자신이 죽은 후에도 지속될 한국인의 무한한 존경심을 가슴에 안고 갈 것이다.》
지난 토요일 김대중 대통령이 “단군 이래 가장 행복하다”고 했을 때 우리 외국인들은 어리둥절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단군은 곰의 자식으로 5000년전 한국을 세운 인물이었다.
김 대통령은 이런 면에서 날카로운 사가(史家)다. 호랑이는 싸우고 또 싸우는 여러분의 팀이다. 곰은 여러분의 감독이다. 히딩크 감독은 갖가지 감정을 표출하며 터치라인을 어슬렁거린다. 상황이 나빠지면 윗도리를 벗어제친 후 망나니처럼 바닥에 내팽개치기도 하고 기분이 좋으면 거의 그라운드로 뛰어가 주먹으로 뜨거운 대기를 후려친다.
경기가 끝난 후 이 곰은 여러분의 선수를 차례로 껴안으며 하나가 된다.
나는 이 부분에 주목한다. 히딩크 효과를 분석하는 숱한 전문가들이 바로 이 인간적인 따뜻함, 히딩크가 전파한 감독과 선수간의 열정과 믿음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강한수씨는 히딩크 성공 신화를 또 다른 측면에서 치밀하게 분석했다. 강씨는 명확한 목표 설정, 주위 영향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목표를 성취해 나가는 히딩크 감독의 강인함을 꼽고 있다. 그는 또 나이와 선후배 관계를 존중하는 한국의 전통 관습을 타파해 팀을 결속시킨 혁신을 칭찬한다. 그건 사실이다. 히딩크 감독은 다른 모든 유럽 감독들이 하는 바로 그것을 했을 뿐이다. 그는 대표팀의 모든 선수를 능력에 따라 동등하게 대했다.
덕분에 놀랍도록 도전적인 박지성은 21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홍명보나 황선홍, 설기현과 같은 노장 선수들과 똑같은 책임감과 특권을 가졌다.
한국인들에게는 이것이 혁신적일지 몰라도 나머지 다른 세계 축구계에서는 이미 뚜렷한 현상이다. 펠레는 17세 때 브라질 월드컵대표팀에 뽑혔고 호나우두와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도 마찬가지였다. 잉글랜드의 마이클 오언도 18세에 대표팀 주전이었다.
우리가 지켜봤듯 히딩크 축구는 순수한 네덜란드식이다.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당시 네덜란드 대표팀을 제외하고 세계 어느 나라 팀도 양 날개가 90분 내내 달리고 수비수와 미드필더가 매 순간 상대를 압박하는 3-4-3 전형으로 플레이하는 팀은 없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 선수들이 자신의 전술을 너무도 빨리 흡수하는 데 놀라움을 넘어서 거의 충격을 받았다. 감독은 스승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배우는 학생이기도 하다.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단순히 훌륭한 감독을 구하러 나선 게 아니라 가능한 한 최고의 감독을 원했다. PSV 아인트호벤, 레알 마드리드, 98프랑스월드컵 준결승에 오른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던 히딩크 감독의 경력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대한축구협회는 확실한 비전에 차 있었다. 잘못될 경우 체면이 깎이는데도 아시아의 울타리를 넘어 나갔고 히딩크 감독을 절대 지지했다.
여러분이 선수들의 몸에 붙은 습관을 바꾸려 할 때, 선수들의 몸에 상상을 넘어서는 힘과 체력을 불어넣으려 할 때, 그 과정에서 생기는 결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김남일은 “감독의 요구대로 힘을 구축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며 “내가 강한 플레이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필요했고 이제 나는 유럽 어느 선수를 상대해도 자신이 있다. 나는 상대팀 플레이메이커 사냥꾼이 됐다”고 말했다.
여러분의 선수들 입에서 히딩크 감독과 똑같은 말이 나오는 것을 들을 수 있다. 히딩크 감독은 자신의 경험상 이 수준으로 이기기 위해서는 체력강화가 유일한 길이라는 자신의 철학을 끊임없이 선수들에게 주입해 왔다. 그는 비록 가능성에 의문을 품었지만 마침내 선수들의 정신력을 바꿔냈다. 히딩크 감독은 몇 달 전 “한국 선수들은 얌전하다”며 “매력적이고 온순하지만 우리는 바로 그 부분을 없애야 한다. 우리는 선수들을 좀 더 거칠게 만들어야 한다. 안 그러면 상대가 승리를 강탈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 그 누구도 한국의 승리를 강탈하지 못했다.
히딩크 감독이 사이드라인에 버티고 서서 그토록 강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한 그 누구도 감히 강탈을 시도하지도 못할 것이다.
나는 이게 바로 히딩크 감독이 18개월간 63명의 선수를 무자비하게 자르고 압축하고도 선수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승리를 쟁취했을 때 선수들은 감독에게 달려든다. 감독이 선수들을 지배하기 때문이 아니다. 감독이 젊은 선수들의 병역의무 면제를 탄원했기 때문도 아니다.
바로 선수들이 가슴속 깊이, 진정으로 그를 좋아하고 믿기 때문이다. 아울러 선수들은 감독 역시 100% 그렇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게 바로 ‘경영’이다.
랍 휴스 잉글랜드 축구 칼럼니스트 robhu@compuserv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