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초의 꿈/ 김규항

나는 마초다. 졸렬하나마 진보주의자 노릇을 하고 사는 내가 마초인 게 자랑일 순 없겠으나 문제는 내 현실적 처지다. 나는 10대 후반 한 시절을 `남자의 세계’에 사로잡혀 보냈고 그 체험은 오늘 여전히 내 정신의 말단을 지배하고 있다. 나는 도리 없는 마초다. 다만 나는 내가 `남자의 세계’를 좇는 일이 `여성의 세계’를 억압하는 일이 되지 않도록 늘 긴장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긴장을 유지한다면 좋은 마초란 좋은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긴장을 생략한 마초란 그저 쓰레기와 같다. 우울하게도 한국은 그런 쓰레기들, 악성 마초들로 그득하다. 악성 마초들은 얼핏 마초보다 더욱 마초답지만(거칠고 뚝뚝한, `의리’를 남발하는 말투 따위) 나보다 강한 사람 앞에서 한없이 당당하고 나보다 약한 사람 앞에서 한없이 부드럽다는 마초의 기본을 전적으로 거스른다. 악성 마초들은 저보다 약한 사람 앞에서 한없이 당당하고 저보다 강한 사람 앞에서 한없이 부드럽다. 요컨대 악성 마초들은 여성, 아이, 후배, 부하 앞에서 강해지며, 대개 폭력적이다. 가정폭력을 포함, 가장 야비한 유형의 이런저런 폭력들이 악성 마초들의 전유물인 건 그래서다.

`여자의 도리’에 관한 남성일반의 `공감대’는 악성 마초의 여성에 대한 폭력을 더욱 공공연하게 만든다. 후배 여성을 성추행한 남성 시인 P씨가 그 일을 비판한 여성시인 K씨를 한 저명한 문학지 홈페이지에서 갖은 추악한 언어로 보복한 일은 그 예다. 한 낯 대로에서 성폭력과 다름없는 그 일이 진행되는 몇 날 동안 모든 남성문인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P씨는 줄곧 K씨의 확인되지 않은 사생활을 들먹였고 `여자의 도리'(여자는 절대 정숙해야 한다는)에 관한 남성일반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 음험하고 강력한 공감대에, K씨의 사생활은 P씨의 성추행 사건과 전혀 관련지을 수 없는 문제라는 상식이 끼어들 틈은 없었다. 그 사건은 이른바 한국 남성문인들(보수적인, 심지어 진보적인)이 하나같이 악성마초이거나 악성마초를 옹호하는 자들이라는 혐의를 갖게 했다.

악성마초들은 야비하기에, 집단을 이룰 때 더욱 폭력적이다. 부산대 페미니즘 웹진 `월장’의 이른바 `대학 내 예비역(한국 군대에서 막 빠져나온 청년들. 나 역시 예비역 육군 병장이지만, 독립군이 아닌 일제부역자들을 중심으로 출발한 한국 군대는 지난 반세기 동안 악성마초의 국가적 양성소 노릇을 해왔다.) 비판’으로 시작된 `월장 사태’는 그 예다. 악성 마초들은 월장 회원들의 전화번호를 인터넷 성인사이트에 올려 폰섹스 요구 전화에 시달리게 했고 강간하겠다 협박했다. 무기가 있었다면 양민학살이라도 재현되었을까. 악성 마초들은 줄곧 월장의 처음 비판 글에 나타난 부분적인 실수를 들먹였고 예의 `여자의 도리'(여자는 절대 실수해선 안 된다는)에 대한 남성일반의 음험하고 강력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런 부분적인 실수가 그 사안 전체의 진실을 덮을 순 없다는 상식은 역시 끼어들 틈이 없었다. `여성 100인위원회’ 이후, 아직은 그런 상황의 반복이다.

추신: 그람시가 감옥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엔 “계집애처럼 칭얼거리지 말고…”라는 구절이 있다. 나는 그 구절에 거부감을 느끼는 내가 적이 대견했다. 나는 인류가 낳은 가장 완전한 인간 가운데 하나인 그람시보다 (단지 수십년 늦게 난 덕에) 좀더 개선된 마초인 것이다. 역사 진보의 엄연한 한 줄기로(혹은, 거의 별개의 줄기로) 여성해방의 역사가 쉼 없이 흐르고 있다. 내 딸과 아들은 여자다운 여자나 남자다운 남자를 넘어 인간다운 인간에 좀더 접근할 것이다. 도리 없는 마초의 `과도적 꿈’이다.

김규항/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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