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에서는 모든 사람을 `경제인'(호모 에노노미쿠스)이라고 가정한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은 자기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혹시 임금이나 봉급이 삭감되지 않을까 걱정해야 노동자는 정신 없이 일을 할 것이고, 혹시 해고나 당하지 않을까 불안을 느껴야 노동자는 기업가의 말에 순종할 것이다. 이것이 최근 유행하는 `신자유주의’의 핵심이고. 미국경제학의 진수다.
지금 세계를 경악과 흥분과 불안의 도가니에 몰아 넣은 테러범을 `경제인’이라는 개념으로 분석해 보라. 도저히 분석할 수가 없을 것이다. 자기의 생명을 왼쪽에 놓고 어떤 경제적 이익을 오른쪽에 놓아야 저울 추가 오른쪽으로 기울 것인가? 이렇기 때문에 경제학은 `테러범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연구 대상으로 삼지도 않는다. 지금처럼 중차대한 사건을 야기한 인물을 연구 대상으로 삼지 않으면 누구를 연구 대상으로 삼을 것인가? `경제인’이라는 가정이 잘못된 것이다.
둘째로 기막힌 사실은, 봉급이 낮고 언제 목이 달아날지 모르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자기의 정성을 다해 `보안검사’ 등을 열심히 할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봉급이 삭감되지 않을까, 언제 목이 달아날까를 걱정하는 노동자는 일을 열심히 해 기업가의 환심을 사기보다는 일을 적당히 하면서 노는 것이 해고당했을 때의 울분을 보상하는 방법이 아닐까? 분명히 이 노동자는 `경제인’으로서 행동하는 것이다.
셋째로, 경제학은 개인 각자의 이익을 합하면 사회 전체의 이익이 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근거하고 있지만,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개별 항공사는 인건비 절약을 위해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보안검사를 담당하게 하는 것이 이익이 되었을 것이지만, 미국 사회 전체 그리고 세계 전체가 지금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로, 경제학은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면 만사가 해결된다”고 주장한다. 도대체 시장만능주의자들은 지금 어디로 갔는가? 미국 대통령이 의회로부터 수백억 달러의 공적 자금으로 전쟁할 권한을 위임 받고 있는 이 마당에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라”고 외치는 사람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빈민들을 위한 구제책에 대해서는 몇 달러 몇 센트까지 계산하면서 “구호금을 주면 더욱 게을러지고 더욱 많은 빈민이 생긴다”고 주장하던 경제학자들이 지금은 매우 조용하다. 모두가 정부의 실패보다는 시장의 실패가 더욱 크다는 것을 느껴 `회개’한 것인가?
다섯째로, 경제학은 “경제에는 국경이 없다”를 앵무새처럼 암송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우리의 이익에 해를 끼치는 나라는 가만 두지 않겠다”고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미국의 이익이 한국의 이익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가? 만약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이라고 지명하면서 전쟁을 개시한다면, 미국경제학의 세례를 받은 한국의 경제학자들은 여전히 “경제에는 국경이 없다”고 중얼거리면서 미국의 공격을 허용할 것인가?
이번의 미국 테러사태는 사회과학 특히 경제학의 방법론에 수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사람은 경제적 이해타산에 사로잡힌 기계가 아니라 온갖 감정을 가진 사회적 인간이라는 점을 경제학은 각성해야 할 것이다. 또한 시장은 사회의 하나의 기구에 불과하며, 긴급한 사태에서는 시장은 작동하지 않거나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왜 미국 정부가 뉴욕증권시장을 1930년대의 세계대공황 이래 처음으로 나흘 동안 문을 닫았겠는가? 그리고 `경제의 세계화’를 이야기하지만 세계정부가 존재하지 않는 지금에는 국민국가가 경제의 기본단위일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국민국가 사이의 이해대립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김수행/서울대 교수·경제학
* CARLITO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2-11-24 1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