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과 사상 2000년 12월호
실천은 언제나 더욱 실천적이어야 한다
: 강준만 선생님의 답변에 대한 나의 해명
홍윤기(동국대 교수·철학)
강준만 선생님에 대한 두 가지 감사
월간 『인물과 사상』 2000년 10월호에 실린 저의 글을 두고 쓴 강준만 선생님의 11월호의 답변 를 잘 읽었습니다. 저로서는 12월호의 이 지면을 빌어 선생님께 두 가지 일을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아무도 모르는 원고의 망명’을 흔쾌히 받아들인 강 선생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의 결단 덕분에 한 인문학자 또는 철학하는 자로서 저의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익명의 독자들에게 전달되었을 뿐만 아니라 뜻밖에도 여러 언론매체를 통해 진지하게 공론화되는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아무도 모르는 원고의 죽음’으로 끝나버렸을 저의 힘든 작업이 강 선생님 덕분에 알만한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소문의 탄생’으로 거듭 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저는 3년 동안 만들어오던 『당대비평』을 급작스럽게 떠난 데서 오던 뼈아픈 상실감을 어느 정도 극복하고 ‘시장의 정치’에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더욱 감사드릴 일은, 요즘 세상에 의견과 정보를 주고받기도 바쁜데, 어느 독자 말대로,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어려운’ 철학적 문장으로 꽉 찬 ‘따분한’ 글을 “아주 재미있고 유익하게” 읽어 주셔서, 저의 글이 또 다른 차원에서 공론화될 수 있도록 그 가능성을 손수 열어준 것입니다.
제가 ‘반입장의 입장’을 쓴 근본 동기 중 하나는 사실 ‘강준만식 글쓰기’에 들어가 있는 비판의 방식과 내용을 철학적으로 보다 명료하게 개념화하고 명제화시키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면에서 참으로 조폭하게 보이는 강준만 현상의 저변에 놓인 우리 시대 영혼의 한 측면을 판독하는 작업이라고나 할까요. 그런 문제의식의 중요한 당사자가 직접 답변하고 그에 대해 다시 필자로서 해명을 하는, 우리 시대의 영혼을 탐색하고 조율하는 그런 경험이 아무 때 아무에게나 주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고마움을 배경으로 강 선생님의 답변을 찬찬하게 훑어본 결과 『조선일보』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각종 움직임들에 대해 강 선생님과 저 사이에 본질적으로 많은 공통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적지 않은 이견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견 중 상당 부분은 제가 좀더 사려 깊게 의견을 정리하고 문제의식을 명료하게 했더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을 선생님의 오해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점 유감을 표함과 동시에 선생님의 깊은 이해를 구합니다. 그런데 저의 해명을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곁다리 얘기를 드려야겠습니다.
월간 『인물과 사상』 11월호에 실린 선생님의 답변과 『신동아』 11월호에 실린 강 선생님과 조성식 기자의 인터뷰를 저뿐만 아니라 저의 아내까지 읽게 되었습니다. 특히 인터뷰에서는 주로 제가 선생님의 비판자로 등장하게끔 글이 짜여져 있는데, 선생님의 반론과 답변을 주의 깊게 읽어본 아내가 드디어 저에게 항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강 선생을 그렇게 몰인정하게 비판해서 상처를 줘요?! 내가 보기에 강 선생 말이 맞는데……”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변명과 반박이 몇 번 오가다가 제가 눈치챈 사실은 어! 이거 잘못 얘기했다가는 이제 ‘원고’ 정도가 아니라 ‘내 몸 통째로’ 어디론가 망명하지 않으면 안 될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입니다. 한 쪽에서는 홍윤기의 강준만 비판이 맵지 않다고 쫓아냈는데, 그 보다 더 가까운 다른 쪽에서는 몰인정하다고 들고일어나 아예 집 밖으로 쫓겨나게 생겼으니, 참 비판이란 작업은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혹시 저의 이 번 비판이 실패하여 선생님한테 가면 이 번에는 지면이 아니라 선생님 자료실 한 구석에 슬리핑백 하나 펼 자리라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시되는 상황입니다.
실명비판은 계속, 더 많이, 더 심층적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제가 강준만 비판에 나서게 된 기본적인 배경과 맥락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강준만식 글쓰기가 문제 많다고 하더라도 2000년 상반기처럼 『조선일보』 문제에 대해 언론계와 지식인계, 기타 시민운동권에서 벌어졌던 것과 같은 비교적 광범한 연대 움직임이 여론의 표면에 떠오르지 않았더라면 홍윤기의 강준만 비판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의 관찰로는 현재의 『조선일보』 반대운동이 짧은 시간 안에 몇 가지 단계를 경과한 것 같습니다.
우선 강준만식 글쓰기로 출판을 통해 독자층의 주목이 모아진 가운데 사이버 세계에서 잠재적으로 결집되었던 안티조선 움직임이 『조선일보』 창간 기념일 시위로 일차 표출되고 ‘나를 고발하라’는 일반시민의 공격적 광고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여기까지는 명백히 3년 동안 지속되어 거둔 ‘강준만식 글쓰기’의 성과라고 봅니다. 이 단계는 어떤 운동에서든 필요한 “여론 저변층의 신뢰성 축적 단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뒤이어 7월 초 황석영 선생님의 동인문학상 심사 거부가 기폭제가 되어 결국 『조선일보』 기고 및 인터뷰 거부로 나타나는 식자층의 집단적 움직임이 나타나는데, 여기서부터는 단지 강준만식 글쓰기가 아니라 『조선일보』 문제를 겨냥하여 사회적으로 산재했던 여러 복합적인 움직임이 급격하게 응집되는 과정입니다. 실제로 지식인들이나 시민운동권의 이런 움직임은 『조선일보』 자신에게도 좀 위협적으로 비쳐졌는지, 지난 9월부터 서울 시내 주요 간선도로를 운행하는 시내버스에 일제히 『조선일보』 선전광고가 부착되기에 이릅니다.
제가 선생님의 글쓰기에 대해 비판을 제기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조선일보』를 둘러싸고 어쨌든 사회적 차원에서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반입장의 입장’에서 손석춘 선생의 말을 빌려 썼듯이, “특히 가장 가열차게 『조선일보』를 비판해 온 강준만 선생의 ‘조선일보 제 몫 찾아주기 운동’을 중심으로 한 안티조선의 활동방식은 앞으로 본격적으로 전개될지도 모를 운동의 시금석이 된다는 점에서 약간의 심도 있는 고찰과 비판이 필요하다고 믿어진다. 지금까지는 ‘언론권력의 힘이 막강한 상황에서 더불어 싸워야 할’ 강 선생과 ‘비생산적 논란을 벌인다면 말 그대로 적전 분열이기 십상’이라 말을 아껴왔던 상태에서 벗어나 필자 나름대로 그 성과를 측정하고 과오를 비판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겨진다.” 분명한 것은 저도 미력하나마 비판이라고 할 때는―우리 강 선생님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반드시 실명비판을 해오던 터라 그 어떤 경우에도 선생님의 ‘실명비판’을 반대할 입장은 아닙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저에 대한 답변에서 “홍 선생님은 진실로 제가 ‘조직자의 연대 마인드와 기획력을 갖고 비판에 임했더라면’, 즉 실명비판에 임하지 않았더라면”이라고 적어 마치 제가 선생님의 실명비판 작업을 전적으로 부인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어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강 선생님이 『신동아』 인터뷰에서 저의 글을 원용한 조성식 기자 물음에 답변하면서 “홍윤기 교수께 한국 지식계에 ‘침묵의 카르텔’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시냐, 그게 바람직하다고 보시냐, 묻고 싶어요”라고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당연히 한국 지식계에는 ‘침묵의 카르텔’이 있으며, 그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 침묵의 카르텔은 본래 식민지 시대 이래 근 90년에 걸친 제국주의 지배, 냉전, 그리고 독재 밑에서 비판의 권리를 강제로 혹은 반(半)자발적으로 포기당한 가운데 지식인의 생존 논리로 체질화되어 왔습니다. 침묵의 카르텔은―강 선생님이 더 잘 알다시피―지식인의 사회적 입장 표명은 물론 학문의 자생적 발전도 억압하는 심각한 장애요인이 되어 있습니다. 더 나아가 경우에 따라 침묵의 카르텔은 그것을 훼손하는 시끄러운 사람들을 침묵 속에서 매장시키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실명비판은 각 지식인에 대해 그 학문적 성과의 질적 검증은 물론 침묵의 카르텔 속에서 자행할 수도 있는 비지성적, 비학문적 작태 또는 퇴행적 의식이 무책임하게 논문이나 작문의 탈을 쓰고 나타나는 행태들을 추적하는 데 꼭 있어야 할 방법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런 견지에서 저는 실명비판은 계속, 더 많이, 더 심층적으로, 발전되어야 한다고 단언합니다. 그리고 “한국의 지식권력을 포함한 시민사회 권력”이 “매명주의나 ‘조직 이기주의’에만 탐닉하고 있다”는 증거만 있다면, 실명비판이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아주 유효한 방도라는 데는 이의의 여지가 없습니다.
실명비판, 그 이상의 실명비판으로서 강준만식 글쓰기
문제는 해당되는 ‘인물’에 대한 강 선생님의 ‘실명’비판이 그 ‘실명’이 거론된 인물과 구체적으로 별 연관이 없는 듯한 ‘지나치게 일반화된 명분 또는 근거’에 의거하고 있는 경우입니다. 강 선생님은 한국 지식계와 시민운동 단체들을 보면 “매명주의의 포로가 된 집단과 개인들”이거나 또는 “탐욕스러운 조직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이들이 “훨씬 더 많다”고 단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자신이 “누구에겐가 ‘매명주의’라는 딱지를 선물할 때엔 충분한 근거를 제시했”다고 주장하십니다. 저도 강 선생님이 구체적 개인이나 단체를 두고 이런 저런 비판을 가할 때 되도록 풍부한 자료작업과 무엇보다 치열한 문제의식을 갖고 비판에 임한다는 것을 인정하며, 그런 선생님의 비판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제가 『조선일보』에 대한 강준만 선생의 비판이 빈곤하다고 했을 때 그것은 『조선일보』에 기고한 진보적 지식인에 대해 강 선생님이 선·악 이분법적 기준을 적용해 나온 ‘결론’에 관한 것이지 그 비판 과정에서 제공된 ‘내용’에 관한 것은 아닙니다(이 문맥적 차별이 선명하지 못했던 점에 관해서는 사과를 드립니다).
그런데 저는 분명히 “강준만 선생의 글쓰기는 ‘오버’가 아니라 그 자체 큰 실책”이라고 썼는데, 분명히 강 선생님께서 “의도적으로 도발하기 위해 쓴 표현”이라 “어떤 비판도 감수하겠다”고 언명하고 용서를 구하셨습니다만, 참여연대 박원순 변호사를 두고 한 다음의 매도성 언설을 한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강 선생님은 월간 『인물과 사상』2000년 6월호에서 특히 참여연대를 지목하여 “한국의 시민운동 지도자들이 명예욕에 사로잡혀 언론에 대해 비굴하게 구는 정도를 넘어 언론과 아주 추악한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쓰셨습니다. 이런 매명주의 비판에 대해 박원순 변호사님이 쓴 답장을 강 선생님은 단행본 『인물과 사상 15』에 공개하면서 자신이 이런 “딱지를 선물한 근거”를 여러 가지 제시하였습니다. 참여연대가 자기 조직을 놓고 신문들이 낸 오보들에 대해 한 번도 항의하지 않았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문제가 많은 정당인 한나라당과 연대하여 특검제 도입을 꾀한다, 언론개혁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말로만 급진적인 개혁을 부르짖는다, 내부적인 비판문화를 허용하지 않는다 등등이 그 근거에 해당됩니다. 제가 보기에 강 선생님의 이런 지적 중 수긍하지 못할 얘기는 하나도 없습니다만, 단 이런 지적들 중 참여연대를 “명예욕에 사로잡힌” 매명주의 단체로 비판할 근거는 단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강 선생님이 하신 비판은 매명주의가 아니라 우리 시대 시민운동의 허약함 또는 부실함의 맥락에서 이해될 성질의 것으로, 그런 시각에서의 비판으로서는 대단히 훌륭하고 적절한 비판입니다. 다만 그 비판이 참여연대를 매명주의로 딱지 찍을 근거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겨우 『조선일보』를 상대로 기고와 인터뷰를 한 행위를 걸고넘어지면서 남의 인생과 명예를 집중적으로 매도한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극구 단언하셨습니다만, 실제로 박원순 변호사님에 대한 비난의 직접적 동기가 “『조선일보』와 인터뷰하셨더군요. 그 전에 『월간조선』과도 인터뷰를 하셨죠?”라고 추궁성 질문을 하는 데서도 밝혀지듯이 『조선일보』와의 관계에서 촉발되었음은 분명합니다.
한 마디로 참여연대에 대한 매명주의 비판은 강 선생님이 하신 여러 ‘빗나간 비판들’ 가운데 압권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올바른 비판에 부당한 결론이 기묘하게 결합된 이런 강준만식 비판이 결코 아무런 결과가 없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사실 이렇게 비판 근거와 비판 결론이 서로 어긋남으로 인해 강 선생님이 심혈을 기울여 구축한 비판 내용은 시작에서 사라지고 선생님의 글쓰기 방식이 대신 집중적으로 문제되는데, 사실 강 선생님이 공개하신 박원순 변호사님의 편지 내용도 강 선생님이 지적하신 시민운동 단체로서의 문제점에 대한 반성적 검토보다는 선생님의 비판 방식에 대한 인간적 유감 표명이 압도적이라 적이 서글펐습니다. 결국 두 분 사이에 오간 언설만으로 볼 때 박 변호사님의 반응은 강준만식 비판이 실패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물론 박 변호사님은 『조선일보』 반대 2차 지식인 서명에 참여하셨지만, 그 참여가 강 선생님의 도발에 못 이겨 타율적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나의 매명주의 비판은 효과를 보았다 라고―그걸 리 없지만―주장하신다면 좀 과장된 언사일 것입니다.
강 선생님께서 선생님에 대한 저의 비판이 “너무나 혹독하여……비교적 객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고 지적하신 부분에 대한 저의 해명이기도 합니다만, 실제로 제 비판이 강 선생님이 다른 분들에게 한 비판보다 더 혹독한가는 차치하고라도, 최소한 모욕이냐 아니냐 하는 판정은 인간의 양식에 입각해 공개적으로 논의해 보면 그야말로 객관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모든 비판이 그렇듯이 비판 작업의 정당성 여부에 대한 궁극적 판정자는 비판을 주고받는 당사자라기보다 그것을 주시하는 공중(公衆)입니다. 이 제3자에 대한 배려야말로 저는 시민적 양식이 객관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시금석이라고 생각합니다.
비판의 분업과 연대를 위하여
그렇다고 제가 강 선생님을 시민적 양식이 없다고 비난하는 것은 절대 절대 아닙니다. 실제로 강 선생님이야말로 실명비판을 통해 한국 지식계의 반(反)시민적 작태를 적절하게 비판해 오셨습니다. 제가 한 세대 지난 뒤에도 살아있어 21세기에 막 들어섰던 오늘 이 시점을 회고해 달라고 하면 저는 자신 있게 이렇게 말하려고 합니다. ‘아 그 때 강준만이란 분이 있었는데, 그와 함께 하며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의 문제를 문제삼는 방법을 익히게 되었지!’ 따라서 선생님이 선생님에 대한 저의 가혹한 진단에 “동의하시더라도” “여태까지 해 온 사회참여적 글쓰기를 중단하겠다”고 저에게 엄포를 놓으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도 있고 실책도 있는 법인데, 서로 뻔히 알고 가끔은 통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의도적으로 실책이나 실수를 새삼 거론하여 중요한 작업을 중단시킬 배짱, 아니 야비함만은 저에게 없습니다.
저는 강준만식 글쓰기를 우리가 겪어야 하는 비판 경험의 중요한 한 국면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바로 그것으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거꾸로 강 선생님도 다른 이가 다른 스타일로, 다른 문제 맥락에서 진행시키는 비판을 존중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강 선생님은 김우창 선생님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중요한 계기’가 그 분께서 “선생님의 ‘공격적 글쓰기’를 폄하하는 발언”을 하신 것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강 선생님이 이런 인상을 받았다고 인용한 김우창 선생님의 문제 발언을 재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즉,
(전투적 글쓰기 혹은 공격 담론은) 그 자체로 의미 부여가 가능한 작업입니다. 하지만 현실적 효용가치보다 좀더 학술적이고 객관적인 비평이 더 유효할 것입니다.”/“현실적 효용가치보다 학술적이고 객관적인 비평이 더 유용하지 않겠는가. 충격보다 가치중립적 관점을 지향하는 차원의 비평이 더 긴요하다. 객관성과 보편성은 모든 담론의 핵심이다. 물론 주관적이고 공격적인 글쓰기도 그 나름의 의미부여가 가능한 작업이기는 하다.
김우창 선생님의 이런 언명은 둘 다 “대학 내부에서 충동 회피, 즉 교수간 또는 사제간 비판의 부재가 대학 낙후의 더 심각한 원인이 아닌가”라는 문제제기에 대한 답변입니다. 저는 강 선생님이 김우창 선생님에 대한 다른 미공개 정보가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이와 같은 문제 맥락에서 나온 김우창 선생님의 위 언명들이 강 선생님의 ‘공격적 글쓰기’를 폄하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역지사지하여, 강 선생님이 “학술적이고 객관적인 비평보다 현실적인 효용가치가 더 유효하다”라고 얘기했다고 하여 누가 그것을 강 선생님이 김 선생님을 폄하했다고 하겠습니까? 선생님은 “∼가 ∼보다 긴요(유효)하다”라는 식의 비교법 표현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셨지만, 중요한 것은 침묵의 카르텔을 깨는 단 하나의 지름길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 학계와 대학계의 문제를 비판할 때 김우창 선생님 같은 분부터 먼저 과녁으로 부각되면 학내에서 운신폭에 상당한 제약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은 다 같은 문제성 언론임에도 왜 하필 『조선일보』부터냐 하는 그 진부한 물음들에 대해 선생님이 어떻게 답해 오셨는가를 상기해 보면 충분할 것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학내에는 진짜 실명비판해야 할 구악(舊惡)의 잔재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리고 강 선생님은 주로 제도권 언론에 부상한 관심사를 추격하여 주목을 받는 혜택을 누려 오셨습니다만, 진짜 중요한 비판을 실명으로 행하는데도 언론에서 단 한 줄조차 보도하지 않는 무시당한 비판들이 한두 건이 아닙니다. 바로 이런 견지에서 저는 사안에 따라 비판의 분업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런 비판들 사이에 연대가 결성되어야 하며, 가능하면 진짜 비판되어야 할 새로운 문제영역들이 이제는 공중의 주목을 받을 수 있도록 비판 전선이 확장되고 심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욱 실천적인 실천을 지향하며: 비판의 사회화와 ‘지식인 제 몫 찾기’
『조선일보』 문제에 대해 선생님만큼 하지 않았다고 해서 선생님이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의 말을 빌어 “잠시 제가 받은 모욕과 상처를 치료할 동안만이라도” “그럼, 니들이 해봐!”라고 좀 섭섭한 폭언(?)을 하셨지만, 다른 쪽에서 하신 말을 들으면 그 애교 있는 폭언이 강 선생님의 진심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조성식 기자와 인터뷰에서 박원순 변호사님이 강 선생님을 두고 “운동의 현장에 나가 다른 사람들 얘기도 들어 보라”고 반박한 것에 대해 “제가 언론비판을 하는 데, 전혀 언론비판을 하지 않는 사람이 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다고 ‘너 언론 비판 해 본적 있어, 없어’라고 묻는 건 예의가 아니죠”라고 답변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말마따나 “’현장에 있냐 없냐’는 기준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온당치 않”으며, “비판을 경청하지 않겠다는 오만한 자세”입니다. 여러 군데에서 여러 가지 말을 많이 하다보면 가끔은 피곤할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홍 교수 당신은 그래도 비판이라도 해봤으니 알만 한 것 다 알텐데 웬 헛소린가’라고 나무라면 별로 할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강준만 선생님의 3년여 비판작업을 보고 이 시대의 동료 지식인으로서 어떻게 나름대로 자기 앞의 몫을 해내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선생님은 “웬만한 지식인은 지금 웬만큼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하면서도 제가 생각하는 식의 ‘연대’는 “거의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우리가 처해 있는 적나라한 현실”이라고까지 단언하고 있습니다. 저는 강 선생님의 지적과 판단에 심정적으로는 동조하면서도 시력 나쁜 눈이나마 약간은 부릅뜨고 한 가지 사족만 덧붙이고자 합니다.
저는 솔직히, 강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양심적인 지식인 모두가 연대하여 『조선일보』에 기고나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언론매체와 관련된 객관적 상황, 즉 자본, 독자 구성, 구독률, 사회적 영향력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조선일보』는 우리 분단체제 문화의 한 구성요인으로 참으로 굳건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 분단 체제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조선일보』의 태도에는 큰 변동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지식인들 사이에 어느 정도 집단적인 호응을 받고 언론 매체의 주목을 받기에 이른 『조선일보』 견제 움직임으로 인해 『조선일보』의 사회적 위상에 적신호가 켜진 것은 사실입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비판의 사회화라고 봅니다.
강 선생님이 이 언론매체에 관해 월간 『인물과 사상』을 통해 “꼭 거쳐야 할 일” 또는 “누군가가 꼭 해야 할 일”을 기초로 닦아놓았다고 한다면, 지금부터는 그 기초 위에서 누가 어떤 일을 더 풍성하게 할 수 있는가를 구상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책임 있는 비전과 확신’이라고 다소 허황된 말을 하여 강 선생님으로부터 그건 “종교”나 아니면 사이비 정치인이나 할 일이라고 그야말로 ‘폄하’를 당했습니다만, 제가 뜻했던 바는 그 어떤 완결된 청사진이 아니라 강 선생님 자신이 축적해 온 비판의 자산과 그 내부역량을 마치 주식 상장하듯이 사회적 공중, 특히 지식인 사회와 대중 사회에 다 같이 상장하는 절차를 밟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선생님이 좀 피곤하여 같은 주제에 다른 말을 하고 있는 점을 잠시 지적하였습니다만, 현재 안티조선 그룹 안에서 강 선생님의 위상은 위험스러울 정도로 단독적입니다. 그리고 강 선생님을 통하여 지식인 사회를 보는 법을 배운 저변의 대중들이 이제 지식인에 대한 비판을 넘어 지식 자체에 대한 혐오를 보이는 경우도 사이버 공간 상에서 간혹 눈에 띠기도 합니다. 지식인 비판이 지식의 거부로 나아가면 실천의 지평이 급격히 왜소해집니다. 대중 안에서 지식인의 정당한 위상을 보여주는 기획이 아쉽습니다. 강단 지식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싶어도 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 제 몫 찾아주기’를 추진한 역량이면 ‘지식인 제 몫 찾아주기’를 할 수 없을까요?
저는 실천이 “옹색하고 초라하고 누추하고 조잡하다”는 데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만 “늘” 그렇다는 데는 절대 동의하지 않습니다. 실천은 언제나 더욱 실천적이라야 하고, 궁극적으로 실천은 언제나 자기변화를 통해서 타자의 변화를 유발하는 그런 넉넉함이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강 선생님은 현재 이 순간 제가 말한 식으로 ‘실천에서의 자기변화’를 기도할 그런 도약 단계에 올라와 있다고 감히 진단해 봅니다.
* CARLITO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2-11-24 1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