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말도 듣지 않을 듯 반항적이고 고집스런 눈매의 라방도 이제 머리가 벗겨지고 깊은 주름이 팬 장년이 되었다. 동년배인 그를 다시 맞은 카락스의 영화세상에서 어둠은 더 깊은 층위로 이동했다. 밤장면이 많다기보다 이것은 고스란히 밤의 몽상과도 같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밤은 천개의 눈을 가졌지만 낮은 오직 하나뿐”이라는 옛 시인의 말이 맞다면 <홀리모터스>는 밤의 외양(look)이 아니라 밤의 영혼을 담으려는 영화다.

 

그는 어떤 관객도 스크린을 바라보지 않는 혹은 모든 관객이 죽어버린 극장에서 늙은 개가 되어 어슬렁거리고 있다. 그리고 그의 곁을 누군가 떠나갔으며, 떠난 이가 여인인지 아이인지 알 수 없다. 사내는 꿈에서 깨어날 수 없고, 스크린을 벗어날 수 없다. 떠난 이를 떠올리며 그는 이렇게 죽은 관객의 극장에서 끝없이 긴 밤을 살아왔고 살아야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한 외로운 감독의 중첩된 악몽과 마주하고 있으며, 이것이 <홀리모터스>라는 영화의 입구이다.

 

<홀리모터스>가 우리를 완전히 사로잡는 것은 ‘중간휴식’이다. 낡고 어두운 성당과 같은 공간에서 드니 라방이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걸어온다. 기둥들의 뒤편에서 또 다른 아코디언 연주자들과 세션맨들이 하나씩 합류하면서 연주 퍼레이드가 벌어진다. 소리는 점점 커지고, 아쉽게 끝날 듯한 순간에 라방이 하나 둘 셋을 외치면 터져나오듯 모든 악기가 목청껏 노래한다. 확신컨대 여기엔 가면이 없다.

 

씨네21 : [신 전영객잔] 진실은 막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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