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의외로 88만원 세대의 특수성을 깊이 다루지 않는다. 두 주인공에게서 88만원 세대의 슬픔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구홍실은 아버지의 사업실패와 어머니의 죽음이 고난과 슬픔의 조건이 되고 있고 천지웅은 실업 백수의 암울함을 대책 없는 천진난만한 캐릭터가 윤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고난에 놓인 인물이 서로를 동정하는 감정을 사랑의 한 형태로 그린다는 점에서 88만원 세대의 로맨스라는 마케팅 문구의 절반은 성취하고 있다. 내가 영화 말미에 작은 울림을 받은 건 이 점이다: 동정하는 연인은 현대적인 사랑 이야기의 소재가 아니지만 오래 된 보편적인 사랑의 형태가 아닌가. (신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동정의 감정을 배제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네가 불쌍해서 너를 사랑해’는 지금 시대에는 차마 당신에게 말할 수 없어 숨기고 있어야 하는 사랑의 신학적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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