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진보를 얘기하기에는 지쳐버린 시대에 불안은 진보의 불가능이 아니라 번식의 불능으로 옮아간 것인가. 번식 불능의 시대는 역사의 종착지로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출산/육아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간주하는 자본주의는 사회적 출산에서 자유로운 성관계를 종용한다. 자의에서 시작한 불임 장애. 그래서 인간이라는 종이 더이상 번식하지 않는 것을 이 역사의 마지막으로 가정하는 상상은 충분히 개연성 있다.
나는 이 가정으로도 충분히 디스토피아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생각이 짧았다. 바로 지금 우리는 충분히 디스토피아적인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 바로 뒤에는 전쟁, 테러, 폭력, 배타와 차별, 격리, 환경오염과 쉼없는 파괴가 있다. 2027년의 미래는 바로 지금이다. 바로 지금, 세련된 도심 뒤에는 황무지와 폐촌을 볼 수 있고, 영화 속 영국 불법이민자 난민촌에서 벌어지는 시가전과 같은 장면을 볼 수 있으며 죽은 남편을 안고 통곡하는 아랍의 여인을 볼 수 있다. 게다가 난민 수용소는 아우슈비츠를 재현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어떤 동일한 형태로 절망적이다. 이것이 이 영화의 중요한 시대정신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영국일까? 하필이면 미국이 아니라 영국일까? 과거의 영국, 지금의 미국, 그리고 다시 미래의 영국. 시대를 뒤집어 시대의 원류와 원죄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덧붙여 이 영화가 원하는 희망의 대안은 무엇일까? 백인-앵글로색슨-청교도-남성이 아니라 흑인-오리엔탈(아랍-동양)-불교-여성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예수가 아니라 마리아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Children of Men (칠드런 오브 맨/멘)”에 대한 한 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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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고 난 후에 찡얼거리기는 했지만, 던져주려는 바가 명확하여 저도 좋았습니다.
이런 영화 보고 난 후에 저도 감상문 같은거 좀 써봐야 하는데… 써보고는 싶은데…
손이 잘 안가네요.
어쨌든 영화 내용은 좋았습니다.